사랑스런 나라 벨기에, 하지만 그들의 잔혹했던 근대사

지난번 벨기에가 배경인 1872년 영국소설 "플란다스의 개"를 포스팅했으니 오늘은 벨기에와 관련해 제가 느낀 것과 또 과거 19세기말-20세기초 해외 식민지에서 자행한 벨기에의 감추고 싶을 근대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추억의 명작만화 "플란다스의 개"가 주는 어린시절 추억(+ 아픔)

"플란다스의 개" 1970~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성인이라면 이 만화의 추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꽤 어릴 때 이 만화를 봤는데 주제가도 주인공들 이름 네로, 아로아,

seattlemom.tistory.com

 

 

위 지도에서 연한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나라들이 EU 연합국가들입니다.

벨기에는 진한 녹색으로 표시해 알아보기 쉽게 해 있습니다.

벨기에도 EU 연합 회원입니다.

수도 브뤼셀이 EU 연합 수도이기도 하니까 EU 연합 회원인 것이 당연하기도... ^^

 

벨기에 국기

 

다 아시겠지만 벨기에는 크게 2가지 언어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남부 왈로니 지역 (Walloon Region)은 프랑스계 주민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북부 플랑드르 지역 (Flemish Region)은 네덜란드어에서 갈라져 나온 플라망어 (Flemish)를 사용합니다. 이 2가지 주요 언어 외에도 독일어를 사용하는 주민도 있어 벨기에 공식언어에 독일어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독일어 사용주민은 거의 1% 정도라서 플라망어를 쓰는 주민 (약 59%)과 프랑스어 사용 주민 (약 41%)에 비하면 아주 적은 편이지요.

 

 

벨기에 하면 지리시간에 베네룩스 3국으로 배운 것으로 기억하실 겁니다. 베네룩스 3국이란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베르크 3개 국가인데 무역 및 금융사업 등으로 유럽 중심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들이지만 경제력도 높고 꽤 잘 삽니다. 예전에 제가 유럽에 두 번째 출장 때는 유럽 이나라 저나라 돌아다니며 공장들을 견학했었는데 룩셈베르크는 정말 작긴 작더군요. 벨기에 남부에서 독일 뮌헨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룩셈베르크는 나라가 작으니까 금방 쓱 지나치더라는. 그래도 룩셈베르크에 잠깐 내려서 몸은 풀고 갔습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저는 룩셈베르크도 방문한 셈입니다.

 

 

90년대 말 제가 호주 배낭여행 중 벨기에 사람들을 종종 만나 이야기를 자주 나눴었는데 벨기에 사람들 참 괜찮아요. 그때 추억 덕분에 개인적으로 벨기에 분들을 좋아합니다. 제가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벨기에 분들에게 프랑스어와 플라망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두 언어를 함께 쓰면 대화하는데 어렵지 않냐고 질문도 했죠. 그분들 답이 학교에서 둘 다 배워서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작은 나라지만 서부유럽 주요 언어군인 라틴어파 프랑스어와 게르만어파 플라망어 둘 다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국가라서 그런지 언어능력도 뛰어납니다. 제가 만난 벨기에 분들은 모두 플라망어 사용자였는데 언어적으로 플라망어 사촌인 영어와 독어도 아주 잘하더군요.

 

그런데 벨기에는 태생부터 이 두 언어 지역 상의 갈등이 있어요. 역사적 문제도 있었고, 또 주민들 간 서로 고집도 세며 자부심도 강해서 언어사용에도 이것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제가 만났던 플랑드르 출신 벨기에분이 해준 이야기입니다.

 

그분 어머니께서는 식당에서 주문할 때 꼭 플라망어를 쓰신대요. 그런데 웨이터는 프랑스어를 쓰는 왈로니 지역출신인 경우도 있죠. 그럼 진짜 농담 하나도 보태지 않고 한 사람은 플라망어로만 주문, 한 사람은 프랑스어로만 주문을 받는답니다. 서로 다 상대방 언어를 이해하면서 절대 말을 섞지 않는 고집. 이것은 90년대 말에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벨기에 상황은 더 악화되는 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남부 왈로니 지역이 부유했어요. 이 지역출신이 자본을 가지고 북부 플랑드르 지역에서 공장을 많이 운영했는데 노동자들은 플라망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였구요. 프랑스 자본가들은 플랑드르 지역 공장을 운영하며 노동력 착취를 많이 했다고 하지요.

 

거기에 두 언어그룹이 서로 다른 언어 사용으로 대화가 되지 않자, 중간단계에 통역을 하며 일을 돕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왈로니 자본가와 플랑드르 노동자 중간에서 농간질도 많이했다고 해요. 그리고 중간자로 통역과 일처리를 도왔던 대부분 사람들은 플랑드르 사람이였지만 그것도 감투라고 오히려 타 플랑드르 노동자의 착취에 앞장섰다는 이야기도 들리구요. 아무튼 꼭 이런 기회주의자에 흡협귀 같은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어요. ㅠㅠ

 

그런데 요즘의 벨기에는 경제력으로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공업화된 북부 플랑드르 지역이 남부 왈로니 지역보다 경제력으로 탄탄하고 훨씬 더 잘살아요. 플랑드르 지역이 독립을 원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리는 것 같고요.

 

벨기에는 이 외에도 와플, 홍합요리, 초콜릿, 맥주 등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와플은 안 먹어 봤고 홍합요리와 초콜릿은 먹어 봤는데 정말 끝내줍니다. 와플은 호텔 아침식사에서 먹었는지도 모르지만 잘 기억나지 않아요. 홍합이야 사실 소금만 넣고 끓여도 맛있는 요리지만 벨기에에서 먹었던 요리가 정말 맛있었어요. 그때 2주 정도 유럽체류로 뭔가 한국음식 비슷한 것이 그리웠던 시기라서 더 반가웠던 홍합요리였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냄비채로 내놓던데, "으~흠, 또 먹고 싶어요~!"

 

 

많은 분들은 초콜릿 하면 프랑스, 스위스, 또 이태리까지는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벨기에 초콜릿도 아주 좋습니다. 언제 유럽방문하면 드셔보세요.

 

 

벨기에의 또 다른 자부심 맥주. 벨기에 분 말씀이 벨기에 각 지역별로 또 동네별로 자기네 특유의 독특한 맥주들이 있답니다. 그때 3,000가지라고도 들은 것 같은데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정말 가물가물. 아무튼 독일만 맥주를 잘 제조하는 것이 아니니 벨기에 맥주도 꼭 마셔 보세요. 저도 벨기에에서 도시를 바꿔 돌아다닐 때마다 밤에 나가 맥주를 즐겼습니다. 낮에 지친 일정을 달래며 마시던 맥주. 정말 맛있더이다~!

 

 

그런데 세상이 요지경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만났던 벨기에 분들은 타 중북유럽인들보다 훨씬 더 친절히 느껴지는데, 과거 식민지시대 아프리카에서 벨기에가 정말 엄청나게 잔인했다는 겁니다. 유럽국가 중 식민지 후발주자라는 면이 있어서 식민지에서 쪽쪽 빨아내는 것을 엄청 심하게 해댔는데 19세기-20세기에 걸쳐 벨기에 두 번째 왕인 레오폴드 2세 (Leopold II, 별명: 욕심쟁이 왕) 시기 콩고와 르완다에서 자행한 끔찍한 악행은 아직도 유명합니다.

 

레오폴드 2세 (재위기간: 1865~1909년)

영국소설 "플란다스의 개"가 출판된 바로 그 시기의 벨기에 왕이었군요.

 

콩고는 일반 식민지가 아닌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소유지였는데 기아와 기근에 시달린 콩고에서 상아와 고무 착취하느라고 할당량을 주고 이걸 맞추도록 아주 심한 짓들을 시켰습니다. 할당량을 맞추지 않았을 시에는 집단학살도 서슴지 않았고요. 이게 그 유명한 고무 테러입니다. 이때의 학살로 콩고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인 약 1백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 2015.10.8. 아래에 내용 추가)

 

그리고 할당량을 지키지 못한 벌로 주민들, 특히 어린아이들의 오른 손목을 자르는 끔찍한 일도 저질렀죠. 당시 벨기에, 미쳤어요~! 벨기에가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저지른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끔찍해서 이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강제노역도 엄청 시켰는데 전에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남자가 강제노역을 거부하면 아내의 손목을 남편 보는 앞에서 잘라 버렸답니다. 정말 잔인했죠. 현 콩고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벨기에의 악행에 시달려 절절한 사연을 가졌던 사람들의 직계후손들일 거예요. 그런데 벨기에가 물러 나간지 한참 지난 지금도 콩고 상황이 좋은 건 절대 아니네요. 세상, 참~

 

* 추가 (2015.10.8.)

제가 포스팅을 쓰기 위해 처음 자료를 찾았을 때는 고무 테러 학살로 전체 인구 절반 정도인 약 1백만 명이 죽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께서 이전 블로그에 댓글로 당시 학살된 콩고인 수가 최소 5백만에서 최대 1천만 정도로 추정된다는 글을 남기셔서 자료를 다시 찾아봤어요. 처음 이 글을 쓴 후 몇 년 지난 현재의 자료를 보니 당시 학살로 죽은 사람들이 약 1백만 명에서 1천만 명, 또는 1천5백만 명까지도 될 것이라고 집계하고 있네요. 하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정확한 사망자 수를 알 수 없고요.

 

그런데 이 기록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1960년대 콩고 민주 공화국의 인구가 약 1천5백만 명이였어요. 그런데 레오폴드 2세가 개인 소유지화했던 1885-1908년의 콩고에서 고무 테러의 학살로 죽은 인구가 1천 5백만명까지로 추정한다면 당시 콩고의 인구가 도대체 몇 명???

학살로 희생당한 1백만명이란 수도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하게 끔찍한 숫자입니다. 하지만 1천 5백만명 이런 식으로 사망자의 수가 당시 인구와도 맞지 않을 만큼 상식 이상으로 올라가면 나중에 콩고 학살 자체의 역사적 사실에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부작용이 있어요. 그것도 아주 위험합니다.

 

어쨌든 요점은 이것입니다.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시기 상아와 고무 착취로 셀 수 없이 많은 콩고인들이 강제노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동안 상아와 고무 착취로 아주아주 많은 콩고 원주민들이 학살당하거나 손목이 잘리는 등 잔인하고 끔찍한 비극을 당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게다가 과거 벨기에는 식민지화한 르완다에서 투치족과 후치족의 갈등을 조장하는 방법으로 통치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현재도 진행 중인 르완다 내전의 씨앗이 되었어요. 따라서 현 르완다 내전의 최대 공적을 벨기에에 돌려야 한다는 슬픈 역사도 있답니다.

 

여기서 꼭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거 영국이나 벨기에는 식민지를 운영할 때 식민지 국민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진짜 적은 따로 있는데 식민지 내부에서 서로들 갈등하고 미워하느라고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싸우게 하는 겁니다. 특히 영국이 이런 정책의 대가였죠.

영국은 특히 식민지 통치 시 소수민족이나 그때까지 상대적 약자였던 집단에 권력을 줬습니다. 그럼 소수라는 불안감 때문에 다수에게 폭정을 해 억압하는 정책을 앞장서서 하게 됩니다. 식민지 국민들 중에도 기회주의자가 있기 마련이어서 이런 갈등으로 이득을 톡톡히 보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지요. 이런 기회주의자들은 식민지 통치국 앞잡이가 되어 식민지 통치자가 자기 손을 하나도 더럽히지 않고도 통치할 수 있게끔 더 설치며 더러운 짓을 알아서 다 해줍니다.

 

내부에서 서로 물고 뜯게 만들면 영국이나 벨기에 등 식민지 통치자들은 뒤에 느긋히 앉아서 보고만 있어도 되거든요. 이런 방식은 현재에도 많은 각국의 정권들이 애용하고 있습니다. 왜 자꾸 한국에서는 지역감정 또는 세대갈등을 조장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미국 같은 곳에서는 사회와 문화가 다르니까 다른 갈등을 이용해 일반 대중을 조종합니다.

 

저 잔인하고 끔찍한 일을 자행했던 레오폴드 2세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그녀의 남편 앨버트 공의 양쪽으로 사촌입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자체도 부부가 사촌지간이었거든요. 빅토리아 여왕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시아버지(남편 앨버트 공의 아버지), 레오폴드 2세의 아버지가 모두 남매형제지간입니다. 영국도 식민지 정책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할 것 없이 쭉쭉 빨아먹고 땅 넓히느라고 바빴고, 후발주자로 영국 사촌네처럼 빨아먹고 싶었던 벨기에도 식민지정책에 늦게 출발했다며 아프리카에서 별 만행을 다 한 겁니다.

 

당시 식민지 쟁탈전에 혈안이 된 국가들은 영국, 벨기에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죠. 유럽의 열강은 거의 모두 해외 식민지 쟁탈전에 달려들었는데, 이런 서구 열강들의 욕심이 1차 세계대전 발발에 도화선이 되는 계기가 됩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서구 열강은 재정리된 식민지 구도로 착취는 계속되었고요. 2차 세계대전도 식민지 착취와 관련이 있고 이 착취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집니다. 이 모든 식민지 정책 뒷 배경에는 영국 런던을 본거지로 한 금융권 (미국 뉴욕에도 런던지부로 시작해 자리잡음)과 이들과 적극적으로 손잡고 행동하는 미정부, 서구 왕실들 및 여러 국가의 정치권들이 있어요.

 

과거 1차 및 2차 세계대전이든 현재의 전 세계적 여러 금융/경제문제들도 식민지정책이 또 다른 형태나 다름없습니다. 그냥 무지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거나 식민지정책은 없다고 착각하게 하기 위해 이름, 표현, 그리고 그 착취방식을 달리 한 것뿐이에요. 한국의 입장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는 일본 식민지였는데 지금은 미국이나 일본 등 경제력 강한 나라에 빨리지만 시스템 상 한국 자체도 다른 가난한 나라를 착취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만 다르죠.

 

현대의 한국의 경제는 이제 마냥 당하고만 있는 게 아니라, 더 큰 나라에 착취당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더 약한 나라에서 착취하는 입장이에요. 이 시스템 하에 경제개발을 한 나라들은 모두 착취자이자 피착취자라는 이 세계 경제질서 하에 있습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유럽이든, 아프리카 오지든 지구 이곳저곳에서 이렇게 빨리는 부는 결국 전 세계 일부 특정집단에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요.

 

* 사진출처: Google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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