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부재가 빡빡머리를 만든다.

미국에 살다 보면 뉴욕이나 LA 같은 도시에서 북적거리면서 살지 않는 한 유행에 무뎌져서 한창 유행하는 옷이나 악세사리 같은 것을 잘 모르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에서는 몇 년, 몇십 년이 지나도 청바지와 티셔츠 패션이거든요. 청바지 같은 경우는 시대에 따라 약간 그 디자인을 달리해서 입긴 하지만, 어떤 분들은 20년 또는 30년 전 기본 스타일의 청바지도 그냥 입고 다닙니다. 사실 청바지와 티셔츠는 변화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보편적 의상 중 하나예요.

 

막내 시동생은 뉴욕에서 음반업체 기술 부분의 부사장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패션에 상당히 민감한 편입니다. 얼굴도 잘생긴 편이고 원래 멋내는 걸 좋아하는 데다가, 기술적인 부분에서 일하더라도 명색이 음반업계 부사장이고 또 사는 곳이 뉴욕의 맨해튼이라서 더 신경 쓰는 것 같더군요.

 

하루는 시동생이 머리를 다듬기 위해서 미장원에 갔습니다. 원했던 헤어스타일은 faux hawk (포헉) 스타일이었습니다. 포헉 헤어스타일은 미국 원주민 Mohawk (모학)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멋지게 변형시킨 스타일로 멋쟁이 남성들에게 한동안 인기가 있던 헤어스타일이었습니다.

 

미 원주민의 모헉 스타일은 가운데 머리만 빼고 머리 전체를 다 면도를 해 밀고서 남은 가운데 머리를 쭈뼛하게 세우는 다소 극단적 (?)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포헉 스타일은 옆머리를 면도로 밀지 않고 적당한 길이로 남긴 채, 약간 더 길게 처리한 가운데 쪽의 머리만을 살짝 쭈빗하게 올려서 멋지게 정리합니다. 스포티한 것을 좋아하는 여성들 중에서도 이런 헤어스타일을 하기도 하더군요.

 

faux hawk

 

이 헤어스타일이 모헉을 변형해서 만든 것이라 가짜 모헉이라는 뜻으로 가짜라는 불어 단어인 "faux (포)"를 써서 포헉 스타일이라고 불리게 되었어요. 영어권에서 패션이나 인테리어 분야에서는 불어 단어를 많이 쓰는데, 이 faux도 아주 자주 사용되는 불어 단어 중 하나입니다.

 

포헉 스타일은 이 헤어스타일을 멋지게 소화한 데이빗 베컴 덕분에 남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모았어요. 시동생이 원했던 스타일도 바로 데이빗 베컴의 포헉 스타일이었습니다.

 

포헉 스타일로 유명한 데이빗 베컴

 

미용실에 갔던 그날, 시동생 머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부탁을 했는데 러시아에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네요. 우선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답니다.

 

걱정스러웠던 시동생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부탁하면서 계속 확인을 했습니다.

Faux hawk (포헉) 스타일로 하고 싶은데, 포헉 스타일 잘 아시죠?

 

러시아 출신 헤어 디자이너는 짧은 영어로도 열심히 답을 합니다.

예, 잘 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이 되었던 시동생은,

정말 포헉 스타일 아시는 거지요? 그럼 믿고 제 머리를 맡겨요.
예,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포헉 스타일 잘 알아요.

 

하지만 헤어 디자이너가 시동생의 머리를 만지자마자 시동생이 소리를 지르고 맙니다.

앗!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옆을 면도해 버리면 어떻게 해요????
포헉 스타일로 해달라고 하셨잖아요. 지금 포헉 스타일하고 있어요.
이게 뭐가 포헉이예요! 매니저 불러주세요.

 

논쟁이 일자 곧바로 매니저가 달려옵니다.

손님, 무슨 일이시죠?
포헉 스타일을 부탁했는데 옆머리를 밀어버렸잖아요.
예???

 

매니저가 시동생 머리를 담당했던 헤어 디자이너와 러시아어로 몇 마디 하더니,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 사람이 포헉을 모헉 스타일이라고 착각했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이 이 사람 첫날이라서 실수가 있었네요.

 

Mohawk

이것이 바로 헤어 디자이너가 착각한 모헉 헤어스타일

 

시동생의 옆머리는 벌써 면도가 되어 싹 밀어져 있었습니다. 머리를 담당했던 디자이너는 옆에서 울고 있고, 별 방법이 없던 시동생은 머리 전체를 면도해서 밀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리 음반업계지만 기술을 담당하는 부서의 제일 높은 사람이 가운데를 쭈뼛하게 세운 모헉 스타일로 직장에 다니는 건 좀 심하거든요.

 

이 사건으로 머리가 어느 정도 길어질 때까지 빡빡머리로 참 추운 시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사정을 모르는 회사 사장 및 회장분들은 시동생의 빡빡이 헤어스타일 보더니 씩 웃으면서 한 마디씩 했다고 합니다.

자네 헤어스타일이 참 효율적으로 보이는구먼!

 

마음 착한 시동생, 이 머리 꼴을 당하고도 돈 다 내고 팁까지 주었다고 하네요. 하긴 그 러시아 헤어 디자이너도 일부러 한 것이 아니니 서로 좋게 끝내는 게 나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님, 실수했던 여자 헤어 디자이너가 막 우니까 남자로서 마음이 안 좋았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머리를 그지경으로 해놓고 미장원에서 손님에게 돈을 받았다는 건 너무하다 싶습니다.

 

미국에서 미장원에 가셨을 때, 헤어 디자이너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으면 머리를 절대 맡기지 마세요. 포헉이 모헉이 되는 건 순식간이랍니다. "포""모"의 이 한 끗 차이는 상당합니다.

 

* 사진출처: Goog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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