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시대 사람들이 정말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을까?

미국 콜럼버스 날(Columbus Day)을 맞아서 지난 월요일 콜럼버스 날에 대해서 간단히 글을 올린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 대한 비화가 실제와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생몰: 1450 또는 1451년~1506년)를 떠올리면 흔히 기존의 편견을 깨고 발상의 전환을 이룬 사람으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실제 그런 사람이였을까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Sebastiano del Piombo작 (1519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콜럼버스 시대의 학자들이 지구가 평평해서 먼바다로 가면 폭포같은 낭떠러지에서 뚝 떨어져 사라지게 된다고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가 아무리 중세의 암흑기 분위기였지만 학자들이 그렇게 아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평평한 지구 겁없이 먼 바다로 갔더니

이렇게 배가 하나씩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중세기에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 또는 그전 이집트의 자료들이 학자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주로 기독교 교회(당시는 서유럽쪽은 카톨릭만 있었으니 카톨릭이였겠죠)의 수도승, 사제를 중심으로 지식이 독점되어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유대교와 현 이스라엘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사상만이 퍼진 것이 아니예요. 유대교와 예수의 사상 그리고 이것을 로마에 쉽게 전파하기 위해 로마의 기존 철학 및 종교와도 어느 정도 접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기독교가 완전히 로마의 국교를 되면서도 그리스와 로마적인 사상을 이용해 신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이용했구요.


고대의 지식들이 중세유럽에서 기독교의 신을 이해하는데 사용되는 것 등으로 과거의 사상이나 생각들이 조금씩 이어져 있었습니다. 아랍쪽은 유럽보다 더 많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이 남아 있었구요. 적어도 유럽의 교육받은 자들은 기원전 4세기경에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콜럼버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뱃사람들도 지구를 포함 태양과 달이 구형의 형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를 바다에서 방향을 잡을 때 이용했었구요.


그럼 왜 콜럼버스가 유럽의 서쪽, 즉 대서양을 가로질러 동양에 가겠다는 계획을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을까요? 그건 콜럼버스가 계산한 지구의 크기가 당시 학자들이나 교육받은 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지구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학자층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일설에는 고대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 아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부는 교역도 했다고 하는데 그건 극히 일부인 것 같구요. 그리고 그 교역해로는 아마도 극비의 무역비밀이였기에 무슨 사건등으로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해지지 않으면 그냥 사라지는 비밀이 되어 버리죠. 바이킹 출신 리프 에릭슨(Leif Ericson)도 아메리카 대륙의 북부에 바이킹의 정착마을(영어로는 이런 정착지도 식민지 colony로 부릅니다)을 건설했지만 스칸디나비아에 있는 바이킹과의 물품 공급 등 교류가 원활하지 않게 되자 점차 쇠퇴해 사라지고 말았죠.


당시 유럽에서는 교역 때문에도 동양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영향을 받아 중국(Cathay)과 일본(Cipangu)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마르코 폴로는 왜 고려를 무시했지??? ㅠㅠ) 거의 모든 학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몰랐으니 당연히 태평양의 존재도 알 수 없었죠. 그저 유럽에서 서쪽으로 가고 가고 또 가면 중국으로 갈 수는 있겠지만(지구는 둥그니까 ^^), 대서양이 너무 거대한 바다라서 가다가 물과 음식 부족으로 죽게 된다고 여겼던 겁니다. 그들 판단으로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는 그저 무시무시하게 큰 한덩이의 거대 바다인 대서양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콜럼버스는 자주 서신으로 교류를 하던 이태리 플로렌스의 점성술가, 수학자, 천지학자였던 토스카넬리(Toscanelli)의 영향을 받아 아래와 같은 지리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토스카넬리가 생각했던 유럽과 중국 사이 (1474년)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의 학자들은 아메리카 존재를 모른 채 거대 바다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다고 믿었기에 틀렸고, 콜럼버스는 지구 크기를 훨씬 작게 잡은데다 아메리카 존재도 몰랐기에 당시 학자들과 콜럼버스 둘 다 틀렸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따지면 콜럼버스가 더 틀렸겠구요. ^^


"당시 카톨릭 신봉자들이 세상은 평평하고 먼바다가 낭떠러지라고 생각했는데 콜럼버스가 지구는 구형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했고 이를 증명했다"라고 잘못 알려진 이야기는 미국작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 1828년에 발표한 콜럼버스 전기의 영향이 큽니다. 워싱턴 어빙은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The Legend of Sleepy Hollow)"과 "립 밴 윙클(Rip Van Winkle)"의 작가로 유명한 분이지요.


워싱턴 어빙


그래서 엄밀히 따지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은 발상의 전환이 이룬 성공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이뤄진 것에 더 가깝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사이에 마침 아메리카 대륙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하자" 등으로 동기 부여를 하기에 콜럼버스를 예로 드는 것은 사실 맞지 않아요. 하지만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도전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합니다.


* 위 사진출처: Google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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