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애는 아무나 하나? 호주여행 중 연애치였던 여자의 엉뚱한 경험

20대 후반으로 접어들던 어느 여름, 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달간 호주로 배낭여행을 혼자 떠났습니다. 대학 다닐 때도 해외여행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되지 않았고, 직장을 다닐 때는 돈은 좀 모여졌는데 또 시간이 없더군요. 마침 시간이 좀 생겨서 홀로 배낭여행이라는 큰일을 질러 버렸지요.


외국에도 여러번 출장 때문에 돌아 다녔고 영어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어서 걱정은 없었는데, 막상 출국일이 다가오니까 타국을 혼자 돌아다닌다는 점에 부담이 생기긴 하더군요. 그래도 이미 저질렀으니 마음을 단단히 잡고 실행에 들어 갔습니다.


호주에서 한달 동안 돌아다니면서 관광도 열심히 하고, 어떤 때는 재밌게 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외롭기도 하고, 어떤 때는 별다른 일없이 하루를 죽이느라고 심심하기도 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래도 그 때 이렇게 혼자 여행을 한 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나쳤던 큰 도시들은 브리즈번(Brisbane), 맬버른(Melbourne), 시드니(Sydney)이고 이 외에 다른 작은 도시들도 많이 지나쳤습니다. 저는 브리즈번, 맬버른, 시드니 순으로 마음에 들더군요. 브리즈번과 맬버른은 마음에 꼭 들어서 언젠가 남편과 아이들이랑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브리즈번


맬버른


시드니

위 사진출처: Wikipedia


여자 혼자 돌아다니니 호주 및 다른 나라 남성의 작업도 몇 번 받은 게 사실이예요. 그렇다고 제가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란 뜻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 그런데 제가 연애에 정말 눈치가 없어서 상대방이 신호를 보내도 잘 몰라요. 이게 저의 치명적인 약점. 대놓고 “너 좋아한다” 이러면 저도 결정하기 편하고 좋은데 대부분 밑밥작업을 하는지 냄새만 피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머리 아파서 저도 거의 신경 안썼습니다.


호주여행시 저렴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 수 있어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묵는 백패커즈 호텔(backpackers hotel)에서 지냈습니다. 저는 저렴한 방에 묵어서 한 방에 6명이 함께 투숙하고 있었는데 국적은 다 달랐어요. 백패커즈 호텔 로비에 가면 근처 산으로 하루 하이킹을 가는 것 같은 하루여행 패키지 광고가 많이 붙여 있습니다. 마침 하이킹 광고가 있길래 신청했더니 백패커즈 호텔에서 근무하는 피터라는 분이 진행하는 것이더군요.


점심도 제공한다니 괜찮더라구요. 숲길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점심에는 피터가 준비해 온 물과 샌드위치 먹고 나름 괜찮았습니다. 피터는 부수입으로 이런 하루여행을 진행하는 것 같았어요. 열심히 걷고 백패커즈 호텔에 돌아 오니까 저녁이 되었고 씻고 잘 준비를 하는데, 피터가 제 방으로 찾아 왔더군요. 오늘 하이킹 멤버들이 다 모여서 호텔 지하에 있는 바에서 술을 먹으니 같이 가자구요. 원래 酒님 모시는 것을 절대 거부하지 않던 저였지만 그날은 피곤해서 싫다고 했는데 꼭 가야한다네요. 마음 약한(?) 제가 거절하기도 뭐해서 간단하게 갈아입고 슬리퍼 질질 끌고 내려갔습니다.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잡담 좀 하면서 두어시간쯤 논 후 다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저도 방에 가려는데 피터가 굳이 호텔 여기저기를 소개해 주겠다네요. 호텔 여기저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친절하게 그러니까 마지못해 따라 다녔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아일랜드와 캐나다 룸메이트 2명도 만났어요. 둘이 저와 피터를 보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고 가더군요. 저는 쟤들이 왜 저리 웃나 해서 이상하게 여겼구요.


TV 시청하는 미디어 룸도 보여주고 나도 이미 다 아는 식당에 주방에... 보여준다고 하니 여기저기 끌려 다니는 중 피터가 한마디 합니다.


여기 1인실도 있는데 오늘 나 거기서 자고 갈거야.


그런데 사실 피터가 호텔에서 자고 가든 말든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별관심없이 대답을 했죠.


그럼 잘 자고 가라. 너무 졸려서 나도 자러 가야겠어. 안녕~!


그리고 뒤도 안돌아 보고 제 방에 돌아와 열심히 잤습니다. 그러고는 한동안 피터를 못봤네요. 며칠 지난 후 룸메이트들이 궁금한 웃음을 지으며 저한테 묻더군요.


저번에 피터하고 함께 돌아다니던데 그날 재미있었니?


그럭저럭. 피터가 소개해 준다고 해서 여기저기 다니긴 했는데 난 졸려서 금방 와서 잤어.


약간 실망하는 눈치. 저는 이 얘들이 왜그런 표정을 짓는 지 몰랐죠. 그런데 몇달 후, 그것도 서울생활을 다시 시작했을 때 갑자기 깨달음이 제게 온 거예요. 깨달음을 얻고 보니 피터의 마지막 코멘트가 바로 그런???


짜식, 날 뭘로 보고...


룸메이트가 물어볼 때도 그게 피터의 작업이였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가 몇달 지난 후에서야 뒷북을 치며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나. 한동안 피터는 자기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했을 지도 모르죠.


어떤 동양여자에게 그리 신호를 보냈건만, 그 여자 참 눈치가 없더라.


그게 바로 저예요. 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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