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목이론(Bottleneck Theory) - 슈퍼화산(Supervolcano)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론
- 먼나라 이야기
- 2014. 4. 3. 09:37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Yellowstone National)이나 슈퍼화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가설인 토바 재난 가설 (Toba catastrophe hypothesis)도 찾게 되었어요. 토바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호수인데 1993년 과학기자인 Ann Gibbons가 토바 슈퍼화산폭발과 인류의 갑작스러운 인구수 감소를 서로 연결시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New York Univ. 의 Michael R. Rampion와 Univ. of Hawaii at Manoa의 Stephen Self에 의해서 지지를 받게 되었고요.
이 가설에 의하면 슈퍼화산인 토바가 7만 년 전쯤에 폭발했을 때 당시의 화산폭발로 6-10년 동안의 화산겨울 (volcanic winter)이 발생했고 그리고 이후 아마도 1,000년여의 추운 시기가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빙하기가 앞당겨졌다는 주장입니다.
이 가설은 1998년 Univ.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의 Stanley H. Ambrose에 의해 병목이론 (bottleneck theory)로 더 발전하게 됩니다. 병목이론에서는 토바 화산폭발 재난에 의해 개체수의 병목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병목현상이란 일반적으로 천재지변 (지진, 화산폭발, 운석충돌, 가뭄, 홍수 등등)이나 무분별한 인간의 행동으로 특정 동식물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병목이론에서는 토바 슈퍼화산의 폭발로 종이 거의 멸종위기에 가깝게 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토바 슈퍼화산 폭발과 연결시켜 설명해 보려는 것 같고, 아무튼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시에 병목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병목현상 당사자 중에는 인류도 포함되어 있고요.
지금 현인류는 인구가 약 70억 도 넘는 거대 집단이고 또 인종도 다양한데 실제 현인류의 조상을 유전적으로 조사해 거슬러 올라가면 그다지 다양하지 않습니다. 5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 사이 남녀 3,000-10,000쌍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조상들에서 퍼진 자손들이라고 하죠.
토바 재난 가설과 별도로 2000년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논문에서는 또 다른 가설을 통해 긴 병목현상 (long bottleneck)이 있었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인류의 개체수가 최소 2,000명까지도 줄었고 이런 지극히 적은 인류인구가 거의 10만년 동안 유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후기 구석기시대 (5만-1만 년 전)가 돼서야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남녀 1만 쌍이든 총 2,000명이든 아무튼 인류가 성공적으로 자손을 퍼뜨리기에는 아주 적은 숫자입니다. 남녀 3,000-10,000쌍이면 총인구가 6,000-20,000명 정도라는 건데 (일부에서는 1만 명이라고도 합니다) 조그만 소도시 인구나 그보다 더 적은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예요.
인류는 타동물에 비해 신체적으로 강한 편이 아닙니다. 따라서 최대 2만 명의 개체라고 하면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지나치게 적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두뇌라는 뛰어난 강점이 있고 집단생활을 하기에 동물이나 뭔가 위험이 있을 때 두뇌를 써서 무기를 만들고 집단으로 방어 및 공격을 하죠. 그게 신체적으로 약한 인류가 특히나 개체수가 적을 때 우선적으로 생존하는 방법이었을 겁니다. 뛰어난 두뇌와 집단으로 함께 사는 생활형태 덕으로 다시 자손을 많이 퍼뜨렸을 수도 있고요.
이런 걸 조사할 때는 보통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넘겨주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나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넘어가는 Y 염색체 (Y chromosome)를 조사합니다. 가끔 돌연변이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제 돌연변이가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 원래의 모습은 뭐였는지 확인 가능하다고 하고요. 미토콘드리아 DNA의 경우는 어머니가 모든 자식들에게 넘겨주지만 모계로만 전해지기 때문에 아들은 자기 자손에 넘기지 못하지만 딸은 계속 딸들을 통해 넘겨주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넘겨주는 미토콘드리아 DNA나 Y 염색체로 과거 출발개체수를 판단하는 것은 오류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이 외에도 많은 것이 부모를 통해 자손으로 넘겨지는데 특정 유전자만 가지고 연구를 해 결과를 내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One hypothesis에 의하면 인류 여성의 조상은 약 14만 년 전 미토콘드리아 이브인 한 여성 유전자에서, 남성의 조상은 약 6만-9만 년 전 Y 염색체 아담인 한 남성의 유전자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도 있으니까요. One hypothesis는 정확한 한국어명을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영어로 썼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류의 유전자의 다양성이 크지 않은 이유가 토바 화산폭발 같은 재난이라기보다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류조상 자체가 2,000여 명으로 아주 적은 개체수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애당초 적었다고 설명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여기서 창조론이나 노아의 방주에 접목시키는 건 아닌 듯하고요. 진화론에도 물론 많은 구멍이 있지만 창조론이나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과학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더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병목현상이 일부 동물에서만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어떤 의견에서는 인류뿐 아니라 다른 일부 동물들에게도 병목현상이 보이는 것을 바탕으로 토바 재난 가설에 힘을 실어주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동물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일부 동물들인 인류,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히말라야 원숭이(붉은털 원숭이), 호랑이, 치타 정도에서만 병목현상이 보이기 때문에 토바 재난 가설로의 설명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병목현상의 조상 이력을 가진 당사자들이 영장류와 고양이과라는 것이 재밌어요.
그래서 저는 토바 재난 가설보다는 다른 이유가 이 병목현상의 원인이 아닐까도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에서 멀지 않은 인도지역에서 나온 고고학적 증거들로 봤을 땐 인간생활에 토바 화산폭발이 미친 영향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나타나고 있다고도 하고요. 어떤 학자들은 과거 꽃가루를 분석했을 때 아시아 남부의 식물들이 사라지는 현상이 있긴 했지만, 이로 인해 인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네안데르탈인 대신 성공적으로 자손을 퍼뜨리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요즘의 연구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의 혼혈로 현인류 구성의 일부라고 보고되거든요. 유럽쪽이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아시아 극동부로 갈수록 그 유전자가 옅어지는데 유럽 및 아시아인 유전자의 1-4%를 구성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최근 연구보고일수록 점점 현대인 유전자 내 네안데르탈인의 비율이 더 높아지는 것 같더군요.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유라시아인들에게는 없는 다른 유전자가 나타납니다. 그 유전자의 주인 되는 화석이 아직 발견이 되지 않은 상태지만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슈퍼화산에서 시작해서 흥미로운 가설인 토바 재난 가설로, 그리고 병목이론까지. 즐거운 자료수집과 공부시간이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Google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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