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 (Spartacus)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로마역사 3/4

공화정을 하면서 로마는 더 강대해졌고 영토확장도 벌여 식민지를 개척합니다. 정복전쟁의 승리와 식민지의 확대는 로마를 더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과 전쟁을 하고 많이들 식민지화 시켰어요. 그중에서 유명한 것이 카르타고 (Carthage)와의 전쟁입니다.

 

이를 흔히 포에니 전쟁 (Punic War)이라고 하는데 명장 한니발 (Hannibal)이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친 것은 2차 포에니 전쟁 (BC 218~201년, the Second Punic War)입니다.

 

코끼리 부대를 데리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하는 한니발 (1866년 작, 작가: Heinrich Leutemann )

 

로마 본토를 공격한 한니발은 거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카르타고가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고 로마와의 평화협정에만 치중합니다. 당시의 카르타고 지도자들은 단기적인 시각을 가진 멍청이들이였다고 판단됩니다. 엄청나게 강대해지는 로마는 절대 당시 지중해 해상무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카르타고를 운명적으로 그냥 놔둘 수없는 처지였어요. 하지만 단기적인 평화를 위해 로마와의 평화협정에만을 치중하던 카르타고는 명장 한니발을 버립니다. 결국 한니발은 망명지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일생을 마칩니다 (BC 183년).

 

카르타고는 한니발을 버린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지요.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최종 전쟁인 3차 포에니 전쟁 (BC 146년)에서 패하고, 로마는 카르타고의 흔적도 남지 않도록 도시를 다 파괴합니다. 전설에서는 로마군들이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소금까지 뿌려 식물조차 자라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소금을 뿌렸다는 건 좀 어려웠을 듯 합니다. 당시 소금이 아주 비쌌거든요. 아무튼 카르타고는 완전히 파괴되고 카르타고 시민들은 당연히 노예로 팔려나갔습니다. 멍청하고 안일한 지도자와 시민들의 극단적인 예가 바로 카르타고 경우입니다.

 

카르타고도 무너뜨리고 지중해에서 로마와 대적할 자는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로마는 식민지와 정복전쟁에서 잡혀온 노예들, 식량, 돈으로 엄청난 풍요속에서 흥청거리게 됩니다. BC 2세기경 로마 공화정의 타락을 느낀 그라쿠스 형제 (Gracchi brothers)같은 일부 개혁가들은 퇴락해가는 공화정에 생기를 주기위해 개혁을 단행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쉽게도 그라쿠스 형제같은 개혁자들의 실패는 술라 (Lucius Cornelius Sulla)같은 독재자의 등장과 연결되어 추후 독재정치 내지 황제의 등극의 씨앗을 마련하게 됩니다. 또 정복전쟁이 많으면 전쟁을 이끄는 장군과 군대가 강성해지게 되고요. 유명 장군들에게 이제 단순히 전쟁 영웅을 끝나지 않고 로마의 모든 것을 움켜쥐는 황제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게 됩니다. 그 욕망을 보였던 자들로는 크라수스 (Crassus), 폼페이우스 (Pompey) 그리고 카이사르 (Caesar)가 있습니다.

 

작년에 방영된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에서 보면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반란 전, 크라수스가 벌써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걸 인물들간의 대화로 알 수 있습니다.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에서도 크라수스의 엄청난 부를 화장실과 관계되는 단어들을 쓰며 상당히 원초적으로 묘사했어요. 참고로 크라수스는 전체 로마 역사상 가장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경제가치와 비교하더라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자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다고 하네요.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반란은 로마의 공화정이 거의 쇠락하고 있었던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스파르타쿠스 노예반란 (BC 73~71년)은 스파르타쿠스를 비롯해 크릭서스 (Crixus), 오너메이어스 (Oenomaus), 캐스터스 (Castus), 개너커스 (Gannicus) 이 5 사람이 주도했어요. 스파르타쿠스를 제외한 이 인물들의 발음은 영어식을 따르겠습니다.

 

캐스터스를 제외한 이름들은 이미 스파르타쿠스 시리즈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 봉기는 크라수스에 의해 대부분 진압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로원의 요구로 노예반란 진압을 도와주러 스페인에서 돌아온 폼페이우스가 우연찮게도 노예반란군에서 도망가던 5,000여명의 노예들을 붙잡고 노예반란 진압의 성과를 자기의 업적으로 돌려 놓습니다. 당연 크라수스는 엄청 화가 났지요. 크라수스는 노예반란 최종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6,000여명을 생포합니다.

 

스파르타쿠스의 패배 (1889년 이전 작, 작가: Nicola Sanesi)

 

이 전쟁에서 스파르타쿠스가 전사했을 것으라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지만 그의 사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폼페이우스의 공로 훔치기 행적에 열받은 크라수스는 생포한 6,000여명의 노예들을 모두 십자가형을 시켜 애피안 도로 (Appian Way)를 따라 로마에서 카푸아 (Capua)까지 쭉 세워 놓습니다.

 

전에 봤던 다른 스파르타쿠스 TV 시리즈에서는 한 원로원 의원이 이 잔인한 십자형을 두고,

십자가를 만드느라 나무를 다 베어서
나무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발이 크겠소.

 

라고 비꼬기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어요.

 

엄청 잔인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예들에게 무섭게 경고하는 부분도 있겠고요.

 

 

스파르타쿠스 (Spartacus)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로마역사 4/4

스파르타쿠스 노예반란 진압 이후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함께 집정관로 선출되는 등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최종 권력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키워나갑니다. 여기에 갈리아 (G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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