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하루를 지냈나요?

2000년 밀레니엄이 되기 전 혜성이나 소행성 같은 것이 지구에 떨어진다는 소재로 종말재난 영화가 좀 나왔었습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히 1998년에 개봉했던 "Deep Impact"와 "Armageddon"입니다. 둘 다 잘 만든 영화이긴 한데 저는 Armageddon이 더 낫더군요.

 

Armageddon에서 Bruce Willis가 폭탄버튼을 누르고 죽기 바로 전 딸의 모습이 짜~악 파노라마처럼 스쳐갈 때 참 가슴이 찡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특히 셋째를 낳으면서 Bruce Willis가 딸의 모습을 쭉 봤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후로는 더욱더 이 장면이 감동적이었습니다.

 

Armageddon 마지막 딸의 결혼식 장면에서 흘러나왔던 "I Don’t Want to Miss a Thing"을 들으면 마지막 세상을 떠나던 그 아빠의 심정이 느껴져 눈물이 나요. 이젠 이 노래가 일종의 제 개인적인 노래 비슷하게 변한 것이지요.

 

Armageddon

 

셋째를 낳으면서 제왕절개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제왕절개는 대부분 하반신 부분마취입니다. 수술이 잘 되었고 상태도 좋아서 아기침대에 따로 누워 옆에서 잘 자고 있는 셋째를 보며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술부위가 터지고 피가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연락을 하니까 간호원들이 몰려들고 의사가 달려오고 남편도 이런 긴급한 상황을 보고 사색이 되고...

 

처음에는 괜찮겠지 했는데 점점 더 많은 간호원들이 들어오니까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의사가 조치를 하다가 안되니까 수술을 다시 해야 한다고 하고, 이제는 진짜 겁이 나고 무서워졌어요. 두번째 수술 준비가 시작되고 남편은 절 안심시키느라 같은 날 두 번째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면서도 떨리는 모습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더군요. 이런 정신없는 과정이 되니까 난생처음으로 이게 내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죽음을 느낀 이 순간 제 머릿속에 스치는 얼굴들이 있었어요. 우선 5번째 생일과 3번째 생일을 각각 한달 남겼던 첫째와 둘째의 얼굴이 보이면서 마음이 참 짠하게 넘어갑니다. 그 후에는 그날 태어난 갓난아기 셋째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셋째는 그날 태어나서 얼굴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순간은 셋째의 얼굴까지 또렸했습니다. 진짜 아이들 얼굴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더군요.

 

저는 제가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자 아이들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때는 죽는다는 것이 슬프다기보다 내가 죽으면 이 아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행히 두번째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회복을 하면서 병원 간호원들 사이에 하루에 두 번 수술한 산모로 유명세를 치르며 다음날에는 농담을 할 여유도 생기더군요. 그제야 옆에서 저를 보살피고 있던 남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남편에게 어제 죽는 줄 알았을 때 아이들만 머릿속에 지나가고 당신은 떠오르지 않더라고 농담 섞어 솔직히 말했더니 우리 착한 남편이 한동안 좀 삐졌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순간에 떠올랐던 아이들 얼굴.

 

죽음을 경험할 뻔 하고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아이들 모두에게 천사같이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하고 굳게 다짐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천사라기보다 지극히 평범한 보통 엄마입니다. 천사 같은 엄마가 되려고 한동안 노력을 하긴 했었어요. 그런데 이게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제 모습대로 편하게 평범한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편해야 아이들도 편해지죠.

 

대신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매일매일 뽀뽀 세례를 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크게 여러번 해야만 하는 엄마이긴 합니다. 저는 이런 엄마로 만족합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진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쉬어가는 시간이 가끔씩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바쁘게 살았는데 마지막 순간 보니까 그 바쁜 생활 때문에 오히려 그들에게 소홀했다는 걸 알게 되면 인생이 너무 아쉽고 아프잖아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저도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오늘 당신이 사랑하는 아이들, 남편과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나요?

 

다행히 오늘 답은 "예네요.

* 이미지 출처: Google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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